2026-07-26
전쟁이 만든 옷 — 트렌치코트에서 뉴룩까지
Pexels · 스타일링 재현 이미지
군복의 디테일이 일상복이 되고, 부족한 천이 새로운 실루엣을 만듭니다. 전쟁은 늘 옷의 모양을 바꿔왔습니다. Leo Daily가 새로 시작하는 '패션 히스토리' 시리즈의 첫 이야기, 전쟁과 패션입니다.
참호에서 태어나다
1879년 버버리가 개발한 방수 원단 개버딘. 1차대전 당시 영국군이 장교용 야전 코트로 채택하며, 참호(trench)에서 입는 코트라는 뜻의 트렌치코트가 됐습니다. 버버리와 아쿠아스큐텀 두 회사 모두 자사가 원조라고 주장할 만큼 경쟁이 치열했던 디자인이기도 합니다.
D링은 수류탄용이 아니었다
트렌치코트의 디테일을 하나씩 뜯어보면 전부 실전에서 나온 이유가 있습니다. 어깨의 견장은 방독마스크나 쌍안경이 흘러내리지 않게 잡아주는 용도였고, 벨트의 D링은 지도 케이스와 검을 매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흔히 '수류탄을 걸었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지만, 여러 자료를 교차 확인해보면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등판의 넓은 케이프는 빗물이 흘러내리도록 돕고, 목깃은 1915년 처음 대규모로 사용된 독가스를 막기 위해 끝까지 채울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장식처럼 보이는 디테일 하나하나가 사실은 전부 기능이었던 셈입니다.
단추 3개의 시대
1941년 영국, 옷도 배급표(쿠폰)로 사야 했습니다. 한 사람에게 연간 66장(이후 36장으로 축소)의 쿠폰이 지급됐고, 원피스 한 벌에 11장, 스타킹 한 켤레에 2장이 필요했습니다. 1942년에는 'CC41(Civilian Clothing 1941)' 라벨이 붙은 유틸리티 의류가 등장했는데, 원단을 아끼기 위해 어깨는 각지고 스커트는 무릎 아래로 짧아졌으며 단추는 3개로 제한되고 접단은 금지됐습니다.
기워서, 다시 입는다
1943년 영국 정부는 'Make Do and Mend'라는 팸플릿을 배포했습니다. 해진 곳을 깁고, 좀을 막고, 심지어 남성복을 여성복으로 고쳐 입는 법까지 담은 실용서였습니다. 새 옷을 살 수 없던 시절, 가진 것을 최대한 오래 쓰는 것 자체가 하나의 생활 기술이었던 셈입니다.
천을 아끼던 시대, 일부러 펑펑 썼다
1947년 2월, 크리스티앙 디올이 첫 컬렉션 '뉴룩'을 선보였습니다. 스커트 한 벌에 많게는 80야드에 달하는 천을 쓴 이 디자인은, 여전히 배급이 이어지던 유럽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부도덕하게 느껴질 만큼 낭비적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쟁이 정말 끝났다는 선언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같은 옷이 두 가지 완전히 다른 의미로 읽혔던 순간입니다.
옷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트렌치코트의 D링 하나, 배급 시절의 단추 3개, 뉴룩의 넉넉한 스커트 한 벌 — 이 모든 디테일은 그 시대가 무엇과 싸우고 있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Leo Daily가 매일 신는 양말 하나에도 소재와 편직 방식을 소홀히 하지 않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옷의 디테일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시리즈는 앞으로도 이어집니다. 다음 이야기는 중세 갑옷의 문장(紋章), 그리고 2차대전 유니폼의 색입니다. 카드뉴스 형태로 먼저 만나보고 싶다면 Instagram(@leodaily_2026)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사진은 실제 아카이브 사진이 아닌 스타일링 재현 이미지(Pexels)이며, 사실 확인은 Smithsonian Magazine·Imperial War Museum·National Archives(UK)·History.com 등을 교차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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